[언론보도] 전 세계 전력회사들의 고민, 전력선 동맥경화를 뻥 뚫어낸 한국 스타트업의 혁신 기술

  • 2026.05.20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주축으로 하는 디지털 대전환 시대에 전력은 산업을 움직이는 혈관과 같은 존재다. 전 세계적으로 데이터센터가 들어서고 신재생에너지 인프라가 급증하면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은 국가와 기업의 생존을 가르는 화두로 부상했다. 전기를 많이 공급하는 것 못지않게 깨끗한 전기를 손실 없이 전송하고 유지하는 ‘전력 품질’ 역시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전력 시장의 변화와 전력 인프라의 사각지대를 빠르게 간파한 한국 기업이 있다. 고조파(Harmonics) 저감형 하이브리드 변압기를 개발한 ‘에너테크’다. 전압을 바꾸는 변압기 본연의 기능에 전력 품질 저하의 원인인 고조파 저감 기술이 접목된 에너테크의 하이브리드 변압기는 국내를 넘어 해외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에너테크의 박훈양(59) 대표를 만나 창업기를 들었다.



◇공학 박사가 된 문과생


에너테크는 2003년 설립된 전력 벤처 기업이다. 창업 초기부터 전력 품질 개선과 변압기 기술 개발에 집중했다. 현재는 하이브리드 변압기, 내진형 변압기, 고효율 변압기, 고조파 필터, 전력 관련 진단·컨설팅 등 다양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핵심 제품은 고조파 저감형 하이브리드 변압기다. 일반 변압기는 전압만 바꿔주지만 에너테크의 하이브리드 변압기는 고조파 상쇄 기능까지 갖췄다.


에너테크를 이끄는 박훈양 대표는 문과 출신이다. 학부에서 행정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시절부터 창업을 꿈꾸며 국내외 일간지와 잡지를 섭렵했다. 미래를 바꿀 기술과 비즈니스 정보를 주도면밀하게 수집하기 위해서다.


대학 졸업 후 6년간 대기업과 중소기업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기획실에서 사업 계획 검증, 예산 타당성 검토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 시기에 다진 자금 시뮬레이션 능력과 사업성 평가 경험은 창업 후 회사를 안정적으로 지탱하는 자산이 됐습니다. 사업 자금과 네트워크를 충분히 확보했다는 판단이 섰을 때 회사를 나와서 창업했죠.”


‘에너지’를 평생의 업으로 삼기로 결심한 때는 군 복무 시절이다. “1990년대 초 군 복무 중 중동에서 걸프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유가가 폭등하고 국제 공급망이 흔들리는 것을 목격하며,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가 넘는 대한민국에서 에너지 관련 산업은 유망할 수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에너지 중에서도 재생에너지나 수력 에너지보다 진입 문턱이 낮고, 수요가 꾸준한 전기 에너지에 도전하기로 했죠.”



◇전기 품질 좀먹는 원흉, 고조파를 발견하다


산업 현장에는 전력 손실, 설비 과열, 전기 사고 같은 문제가 늘 도사린다. 이런 문제들은 비용과 안전 문제로 귀결되곤 한다. 박 대표는 전력 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기 위해 2003년 전기 에너지 벤처 기업 에너테크를 설립했다. 대표가 기술에 어두우면 소통과 경영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해 창업 후 전기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그가 주목한 전력 에너지 시장의 문제는 고조파다. 발전소에서 송전되는 전기는 왜곡되지 않은 안정적인 파형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 전기를 최종 소비하는 공장, 빌딩, 아파트 등에서 제어 장치나 반도체 소자가 탑재된 기기를 사용하면 전압과 전류의 파형이 일그러지고 왜곡되면서 전력 손실이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원래의 기본 주파수(60Hz) 외에 2배, 3배 등 정수배 주파수 성분이 추가로 생기는데, 이를 고조파라고 한다.


현장에서는 고조파의 발생을 ‘전기가 오염됐다’고 표현한다. “고조파는 전력 품질을 떨어뜨리고 설비 과열이나 오작동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꼽힙니다. 일본에서는 전력 품질 향상과 깨끗한 전기가 화두가 돼, 고조파 저감 기술이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산업에 적용되지 않은 상태였죠. 경쟁자가 없어 진입하기 유리한 상황이었어요.”



◇시대를 너무 앞서간 신기술과 눈물의 5년


창업 초기부터 고조파 저감과 변압기 관련 기술 연구에 매진했다. 다만 기존 변압기 시장의 수요, 공급 관계가 매우 공고해 신규 기업이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수요자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는 접근법이 필요했다. 박 대표는 전력 공급을 위해 무조건 설치해야 하는 필수 장치인 변압기에 고조파 저감 필터를 내장하는 고조파 저감 하이브리드 변압기를 구상했다.


공룡 기업 사이에서 설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전략적인 협력을 택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에 찾아가 ‘하이브리드 변압기를 공동 개발하면 한전은 신기술을 주도하게 되고, 에너테크는 한전이라는 방어막을 확보하게 된다’며 공동 개발을 제안했습니다. 2008년 한전 산하의 5개 발전사와 공동 개발에 착수해 하이브리드 변압기 기술을 고도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신기술(NET) 인증, 조달우수제품 지정을 받으며 시장의 신뢰를 쌓았죠.”


엄격한 실증 테스트를 거친 후 2010년 하반기, 하이브리드 변압기를 시장에 출시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당시는 인덕션 대신 가스레인지를, LED 대신 형광등이 주류라 한국 시장에서 고조파 발생 우려 자체가 적었습니다. 제품 판매에 앞서서, 하이브리드 변압기의 필요성을 알리는 게 급선무였죠. 약 5년간 학회를 다니고, 기술 세미나를 열고, 전시회에 참가하면서 하이브리드 변압기의 존재를 알리고 다녔습니다.”



◇데이터센터 시대 열리자 판이 바뀌었다 


시기상조라 불렸던 에너테크의 기술은 산업 생태계가 디지털로 재편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주방 가전이 전자레인지에서 인덕션으로 바뀌고 반도체가 들어간 LED 조명이 주류가 됐다. 태양광 발전 설비도 증가했다. 태양 전지에서 생성한 직류(DC) 전기를 교류(AC)로 바꾸는 인버터는 대표적인 고조파 발생원이다.


특히 24시간 고가의 서버 장비를 돌리며 엄청난 전력을 소비하는 데이터센터의 등장은 에너테크에 거대한 기회가 됐다. “데이터센터는 고가의 서버와 정밀 장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해야 합니다. 미세한 전력 품질 저하만으로도 갑작스러운 정전이 발생할 수 있거든요. 여기에 전기차 충전 설비, 태양광, ESS(에너지저장장치) 같은 분산 전원이 많아지면서 전력 품질과 공급 안전성, 효율성 확보가 산업계의 생존 과제로 대두됐습니다. 전압만 바꿔주는 변압기로는 전력 손실 증가와 고조파 오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시중에 고조파 저감 기술이 없었던 건 아니다. 다만 최선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예컨대 기존 방식으로는 변압기와 고조파 필터, 정류기를 따로 구매해서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저희의 하이브리드 변압기는 변압기와 고조파 필터를 한데 모아 가격 경쟁력과 공간 효율 모두 잡을 수 있습니다. 기존 방식과 비교했을 때 설비 투자비는 40%, 운영비는 20% 적게 듭니다. 전력 손실은 7.6% 더 줄일 수 있습니다.”



◇구독형 자산관리 시스템 개발, 2029년 IPO 목표


에너테크는 공공 인프라 시장에서 다진 실적을 바탕으로 공항, 전력회사, 전산센터, 정부기관, 대기업 등에 하이브리드 변압기를 1000대 이상 납품했다. 누적 판매액은 350억원에 달한다. 2018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 꾸준히 흑자를 내고 있다. 국내 특허 22건과 미국, 중국을 포함한 해외 특허 4건을 보유하는 등 기술적 해자도 구축했다.


업력 20년이 넘은 흑자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투자도 받았다. 최근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163억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배치 6기’ 기업으로도 선정됐다. 디캠프의 멘토링 지원을 해외 진출의 발판으로 활용할 구상이다.


제조업에서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구상이다. “변압기는 한 번 설치하면 교체 주기가 수십 년에 달하지만 정전 사고를 막기 위한 관리는 수시로 이뤄져야 합니다. 기존의 변압기 관리는 눈으로 보거나 타는 냄새, 이상 소음 등 오감에 의존했습니다. 문제가 감지되었을 때 이미 설비가 완전히 망가진 상태인 경우가 많았죠. 이에 가스, 전압, 전류, 고조파, 진동 센서를 기반으로 변압기 상태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변압기 자산관리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이상 징후를 파악해 고장 가능성을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정수기 렌탈처럼 구독형 모델로 출시할 계획입니다.”


최근 말레이시아 데이터센터 납품을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를 발판으로 해외 진출을 본격화할 구상이다. “데이터센터, 태양광 에너지 수요 증가는 전세계 공통 현상인데요. 고조파 감소형 하이브리드 변압기는 저희만의 무기입니다. 미국과 중동, 중앙아시아에서도 제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죠.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기 위해 생산력 향상과 시험 인프라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2029년 2분기엔 기업공개(IPO)를 목표로 합니다. 전력 솔루션 제조기업을 넘어, 에너지 인프라 관리 플랫폼으로 성장하겠습니다.”



 


출처  |  조선일보

일자  |  2026.05.20